오늘 숲길을 걷다 보니,
아직 다른 나무들은 깊은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는데
홀로 부지런히 꽃을 피운 개암나무를 만났습니다.
화려한 복수초나 진달래처럼 눈길을 사로잡지는 않지만,
이른 봄 숲의 한 귀퉁이를 묵묵히 지키며 제 역할을 다하는 모습이 참 기특해 보였습니다.
이 사진 속의 꽃은 개암나무의 수꽃입니다.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니 어릴 적 듣던 옛이야기가 떠오르더군요.
혹부리 영감이 도깨비들을 만나 위태롭던 순간,
낮에 주워둔 개암 열매를 '딱!' 하고 깨물자 그 소리에 놀란 도깨비들이 방망이까지 버려두고
도망갔다는 그 친숙한 이야기 속의 주인공 말입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함보다는,
이 개암나무처럼 수수하면서도 오랜 인고의 시간을 견뎌낸 존재들에 더 마음이 머물게 됩니다.
남들의 요란한 박수갈채나 스포트라이트가 없어도,
자기 자리에서 묵묵히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는 자연의 섭리를 배우게 됩니다.
저 또한 오늘 숲에서 마주한 저 식물들처럼,
제가 선 위치에서 흔들림 없이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보았습니다.
겉치레보다는 내실을 기하며, 언제나 현재에 충실한 구성원이 되고자 노력하겠습니다.
아직은 산속에 찬 기운이 남아 있어 공기가 제법 차갑습니다.
환절기에 각별히 건강 유의하시길 바라며,
개암나무의 강인한 생명력처럼 활기찬 한 주 되시길 기원합니다.
제석산 숲속 벤치에서 정정채 올림

정정채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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