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춘화(춘란)
지난 3월 중순, 금당산 소나무 숲과 참나무 숲의 호젓한 그늘 아래에서 보춘화(춘란)를 만났습니다. 길게 뻗은 녹색 잎 사이로 수줍게 고개를 숙인 채 화려하게 피어난 보춘화는 주변 풍경과는 또 다른 깊은 아름다움을 자아내고 있었습니다. 우리 야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난초이지만, 일본에서는 보기 드물어 매우 귀한 대접을 받는 식물이기도 합니다. 그 은은한 향기와 자태에 마음을 빼앗기다 보면, 어느새 집으로 데려가 곁에 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매력적이지요.
간혹 꽃이 핀 보춘화가 무척 예뻐서 집으로 옮겨 심는 분들도 계십니다. 하지만 머지않아 후회하시곤 합니다. 보춘화는 옮겨진 환경에서 오래 버티지 못하고 금세 시들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정성을 다해 가꾸어도 살려내기가 무척 까다로운데, 여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보춘화는 대개 솔잎이 두텁게 쌓인 소나무 숲에서 잘 자랍니다. 보통 소나무는 다른 식물이 자라지 못하도록 ‘갈로탄닌’이라는 타감 물질을 내뿜어 자신의 영역을 지키는데, 보춘화는 오히려 이 척박한 여백의 공간을 지혜롭게 역이용합니다. 보춘화 뿌리에 사는 곰팡이(균류)가 성장에 필요한 양분을 공급해주고, 보춘화는 광합성으로 만든 영양분을 곰팡이에게 나누어 주며 서로 돕고 살지요. 하지만 이 균류는 오염에 매우 취약하여 도시 환경에서는 오래 살지 못하고 죽고 맙니다. 결국 보춘화도 단짝인 균류 없이는 홀로 살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식물학적으로 난초의 꽃은 가장 진화된 형태 중 하나로 꼽힙니다. 식물이 많은 에너지와 비용을 들여 꽃을 피우는 이유는 수분을 도와줄 ‘중매쟁이 곤충’을 확실히 유인하기 위해서입니다. 정성껏 준비한 꿀을 아무 곤충에게나 내어주면 수분 성공 확률이 낮아지기 때문에, 보춘화는 자신만의 특별한 중매쟁이만 찾아올 수 있도록 정교한 장치를 마련해 두었습니다.
밖에서 보면 난초 꽃 깊숙한 곳에 숨겨진 꿀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만약 난초가 설정해 놓은 무게보다 무거운 곤충이 앉으면 꽃잎이 너무 처져서 들어갈 수 없고, 너무 가벼운 곤충에게는 꽃잎이 아예 반응하지 않습니다. 오직 약속된 무게를 가진 곤충이 내려앉았을 때만 비로소 입구가 열려 꿀을 허락하는 구조이지요.
이처럼 정교한 세계를 보고 있으면 곤충이 식물을 이용하는 것인지, 아니면 식물이 곤충을 이용하는 것인지 신비롭기만 합니다. 어쩌면 이들은 서로 경쟁하는 사이가 아니라, 각자의 생존을 위해 긴밀하게 협력하며 살아가는 공존과 공생의 진정한 동반자가 아닐까 싶습니다.

정정채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