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어져 가는 아침입니다. 오늘 아침엔 안개가 내려앉아서 고요한 숲속의 상수리나무가 도토리를 떨어뜨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습니다. 겨울이 오면서 활엽수들은 잎의 색깔을 바꾸고 떨어뜨릴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주변에서 자주 보이는 대나무만 빼고는 모두 바쁘게 겨울 맞을 채비를 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대나무와 관련된 몇 가지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1. 대나무는 풀이다.
풀과 나무를 구분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줄기를 잘라 형성층 여부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나무는 형성층이 있어서 해가 지나면서 부피 생장을 이루어 줄기의 굵기가 굵어지지만, 풀은 형성층이 없어서 몇십 년을 지나도 굵어지지 않습니다. 대나무도 백 년이 지나도 굵어지지 않지요. 대나무는 풀이니까요. 담양 죽녹원에 가면 아주 굵은 대나무가 있는데, 오래 자라서 굵어진 것이 아니라 처음 죽순일 때부터 굵게 자라 올라온 것이에요. 대나무는 풀, 초본이에요.
2. 대나무는 백 년을 자라도 더 이상 키가 크지 않는다.
우후죽순이라는 사자성어가 있습니다. 비 온 뒤에 죽순처럼 자란다는 뜻인데, 실지로 5월에 죽순이 땅에서 올라온 후 비가 오고 나면 20m씩 한 번에 자라납니다. 그리고 그 상태로 죽 이어집니다. 대나무의 특징이 줄기에 있는 것인데, 마디도 죽순에 있던 개수 그대로입니다. 마치 단단히 눌린 스프링이 죽 펴지듯이 죽순이 펴지는 것이에요. 그래서 수십 년이 지나도 대나무 높이는 항상 그대로입니다.
3. 대나무밭의 대나무는 모두 클론이다.
대나무는 뿌리로 번식하는 식물입니다. 한 나무뿌리에서 새순이 나와서 밭을 형성하기 때문에 대나무밭에 있는 대나무는 모두 유전자가 동일한 복제 식물입니다.
4. 대나무는 평생 딱 한 번만 꽃이 핀다.
대나무, 조릿대, 이대 등은 생활사 중 딱 한 번만 꽃을 피우고 나서 죽습니다. 대나무밭의 대나무들은 모두 클론이기 때문에 같은 시기에 함께 꽃을 피우고 죽습니다. 왜 그런지는 정확하게 알려지지는 않았고, 여러 가지 가설이 있습니다. 그중 제가 생각하기에 가장 합리적인 가설은 이렇습니다. 대나무 씨앗을 설치류가 매우 좋아해서 열매를 남김없이 먹어 치우기 때문에(벼과 특성상 쌀과 비슷해서요) 씨앗으로 번식하기 힘들죠. 그런데 모두 클론이라 유성생식을 하지 않으면 환경 적응에 불리하기 때문에 꽃을 맺고 열매를 생산해야 합니다. 많은 대나무가 한꺼번에 꽃을 피우고 씨앗을 퍼트리면 설치류가 배불리 먹고도 일부는 남아 싹을 틔울 수 있고, 모체가 전부 없어지고 공간을 내어주면 어린 개체가 잘 자랄 수 있을 거라는 내용입니다.
5. 대나무를 캐다가 아무리 멀리 떨어진 곳에 심어도 꽃피는 시기가 같다.
정말 신기한 것은 바로 이겁니다. 대나무밭에서 한그루를 캐다가 멀리 떨어진 다른 나라에 옮겨 심어놓는다고 가정합니다. 우리나라 대나무에 꽃이 피면 신기하게도 똑같은 날에 옮겨 심은 나무에도 꽃이 핀다는 것입니다. 이미 실험적으로 확인이 된 내용인데요, 이 또한 관련 작용이 정확하게 설명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 일상생활에서 매우 쓸모 있는 식물이면서 알면 알수록 신기한 식물이 바로 대나무입니다^^
정정채 박사
2023년 11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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